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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 프로젝트

'갓생'이라 불리던 나의 루틴이 퇴사 후 무너진 이유: 성실함과 환경에 대한 고찰

'갓생(God-Life)'. 한때 제 삶을 따라다니던 수식어였습니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하며 하루 24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사는 사람.

주변에서는 저의 성실함을 칭찬했고, 저 역시 그런 제 모습에 만족하며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 견고해 보였던 성실함의 성은, '퇴사'라는 단 하나의 사건으로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 글은 단순히 새로운 AI 툴 사용 후기나 기술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의 가장 부끄러운 민낯일 수도 있는 '무너짐'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믿고 있던 '성실함'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환경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지에 대한 짧은 반성이자 고찰입니다.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의 '갓생'

퇴사를 결심하기 전, 저의 일상은 누가 봐도 완벽한 자기계발 루틴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다음과 같은 패턴의 반복이었습니다.

  • 아침: 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 뇌가 가장 활발하게 깨어나는 시간을 위해 아침 러닝을 했습니다. 회사에 가기 전까지 남는 시간에는 어김없이 개인 공부를 했습니다.
  • 출퇴근길: 지하철의 흔들림 속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귀에는 항상 온라인 강의가 재생되었습니다. 1분 1초도 낭비하지 않겠다는 강박에 가까운 다짐이었습니다.
  • 점심시간: 동료들과의 식사는 최대한 빨리 마쳤습니다. 남는 자투리 시간은 저에게 또 다른 공부 시간이자 독서 시간이었습니다.
  • 저녁: 회사에서 저녁 식대를 지원해준다는 점을 '활용'해, 밤 9시, 10시까지 남아 논문을 보거나 개인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어차피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있으니, 평일 저녁이나 주말 오전에 열리는 온라인 스터디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언뜻 보면 엄청난 의지력으로 하루를 통제하며 살아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항목에서 '회사'라는 단어를 빼면 단 하나도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했던 이유는 정해진 출근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고, 밤늦게까지 공부할 수 있었던 동력은 저녁 식대와 '사무실'이라는 공간이 제공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유, 그리고 무너져 내린 루틴

스스로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온전한 제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퇴사를 결심한 그날, 저의 모든 루틴은 신기루처럼 사라졌습니다.

강제성이 사라진 아침은 늦잠으로 채워졌고, 통제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예전만큼의 집중력을 발휘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매일 야근하던 그 시절의 3분의 1만큼도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자유는, 그 자유를 온전히 활용하고 통제할 역량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비로소 의미가 있다는 뼈아픈 사실을 말입니다.

저의 성실함은 순수한 내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회사'라는 강력한 외부 환경과 구조에 기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원하는 삶과 현재의 삶, 그 간극을 준비하는 자세

지금의 저는 여전히 자유로운 삶을 꿈꿉니다. 1인 기업가가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형태의 자유로운 직업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득 돌아보면, 지금의 저 역시 '특정 루틴'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얽매여 있음을 발견하곤 합니다.

이는 비단 저만의 고민은 아닐 것입니다. 흔히 '파이어족(FIRE)'을 꿈꾸며 현재의 삶을 극도로 절제하고 치열하게 일하는 분들과 대화할 때 비슷한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들은 은퇴 후의 장밋빛 미래를 꿈꾸지만, 막상 그토록 원하던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주어졌을 때 그 시간을 어떻게 채우고 유지할지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하는 삶과 현재의 삶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우리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뿐만 아니라 '바뀐 뒤의 모습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진정한 성실함이란 정해진 환경 속에서 발휘되는 능력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 놓이더라도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고 삶을 주도적으로 설계해나가는 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이 모든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쉬는 날만 되면 한없이 나태해지는 제 자신을 발견하며 매번 반성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완벽한 자유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그저 더 나은 환경과 구조를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반복하는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의 '성실함'은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나요?